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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일치운동과 함께 할 수 없는 이유

[기독교 기본교리 탐구] 조남민 목사/ 밸리성경교회/한인성경선교회- <6회>

가톨릭 교회일치운동 교리는 비성경적인 교리이다

가톨릭의 세례나 성체에 대한 가르침이 성경에 어디에 있는가? 이는 성경에 나타난 것보다 성경이 기록된 이 후에 유명하다고 하는 사람들(소위 가톨릭 박사나 교부들)에 의해 기록한 글을 따라 전통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또한 그 전통과 함께 성경을 재해석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1517년 “의화 교리”로 가톨릭에서 갈라진 이후 500년이 지난 지금, 첫째로 개신교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5가지를 알아보았고, 둘째로 현재 가톨릭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파도가 어떻게 개신교에 밀려오고 있는지 두 가지를 알아보았다. 간단히 다시 정리해 본다. 첫 번째 5가지는 다음과 같다.

1. 개혁 후 482년, 1999년 루터교와 가톨릭이 “의화 교리” 성명서에 공동 합의
2. 2006년 7월, “1999년 [의화 교리] 공동선언”에 감리교가 합의
3. 개혁 500년 주년 기념, 2017년 7월 세계개혁교회연맹이 가톨릭과 의화 교리에 합의
4. 2013년 1월 텍사스 오스틴에서 세례의 상호인정에 대한 공동협정.
5. 2014년 5월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 창립. 2017년 3회 총회 실시.

두 번째로 에큐메니칼 운동, 즉 세계교회일치운동의 가톨릭의 파도의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가톨릭 일치운동의 영구성에 관한 교리 (영구적으로 공포된 교리/ 반드시 이루어야 할 가톨릭의 변할 수 없는 교리)
2. 가톨릭 일치운동 교리에는 모든 가톨릭 신자가 참여한다 (현재 13억 가톨릭 신자- 교황이하 추기경들, 대주교들, 주교들, 사제 신부들, 수녀들, 평신도들이 모두 참여하고, 참여해야만 하는 교리)
가톨릭의 제2바티칸 회의(1962-65년)에서 제정한 가톨릭 일치운동의 영구적인 교리의 선포는 그 후 50년이 지나면서 결실을 보고 있다. 그동안 가톨릭이 얼마나 열심히 이 운동에 전념을 했는지 위의 결과들을 보면 한 눈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톨릭은 이 정도의 결과에서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톨릭의 이 교리는 영구적이고 그들의 과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가톨릭 신자는 이 운동 교리에 참여해야하고 반드시 이루어야할 가톨릭의 사명인 것이다.
근래에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누던 중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가톨릭의 어떤 신부가 그러는데 ‘요즘 개신교가 하나 둘씩 돌아오고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는 위의 5가지의 모습을 보면 가톨릭에서는 누구나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신교는 산발적이고 개인적으로 이에 참여하고 있지만 가톨릭은 그들의 교리를 수행하기 위해 모든 가톨릭 신자가 참여하게 되어 있다(현재 가톨릭 인구는 약 13억으로 집계). 그러므로 가톨릭은 이 운동의 결과를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 교리: 그렇다면 가톨릭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일치운동의 내용은 어떤가? 이제는 가톨릭의 교리, 즉 가톨릭의 가르침이 성경과 어떻게 다른지, 무엇이 다른지를 알아볼 차례이다.
가톨릭의 가르침에 대해 옳고 그름을 왜 올바로 알아야 할 것인가?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올바로 알고 올바로 순종하는 것이 피조물인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에 어떤 가르침이든지 성경에서 말씀하는 진리의 잣대로 확인해야한다. 이 말씀이 성경말씀을 넘어서고 있는지 확인해 보아야한다(성령님이 사도 바울을 통해 성도들에게 하신 말씀-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고전 4:6)), 베뢰아 사람들은 사도가 말씀을 전했을 때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행 17:11)했다. 1세기 초대교회 교인들이 사도의 말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으면서도 그것을 성경으로 날마다 확인했다. 성경 말씀이 진리를 확인 하는 잣대이다. 그러므로 21세기를 사는 성도로써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우리도 성경으로 확인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만일 가톨릭 일치 운동이 성경적이 아니라면 성경대로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든지 가톨릭 일치운동에 반대하며 사단의 궤계를 차단시키고, 개신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만 한다.
이를 위해 간단히 가톨릭 일치운동의 교령에서 한두 가지 지적해본다. 예를 들면, 가톨릭의 일치운동 [교령 24]에는 “온전히 또 순수하게 가톨릭적이 아닌 일치 활동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다. 전에도 지적했지만 이 말은 일치활동은 가톨릭 교리에 맞게 진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가톨릭교회 일치운동은 가톨릭 교리에 맞게, 즉 가톨릭 일치운동 교령에 맞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만일 가톨릭 일치운동 교령에 나타난 교리가 진리의 잣대인 성경과 일치한다면 우리는 일치운동을 마땅히 함께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가톨릭 일치운동 교령의 가르침이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가톨릭교회 일치운동 [교령 4]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일치교령] 4. … 이러한 방법으로 조금씩 교회의 완전한 일치를 가로막는 장애들을 극복하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인 성찬례를 거행하며, 하나이고 유일한 교회의 일치 안으로 모이게 될 것이다….
이 교령은 일치를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같은 “성찬례”를 거행하게 될 것이고, “하나이고 유일한 교회”로 모여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이러한 교리를 잘 살펴보면 왜 가톨릭이 <세례 상호 인정에 대한 공동협정>이나 <직제 협의회>와 같은 회의를 중요하게 내세우고 추진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이 둘은 모두 가톨릭이 말하는 “하나이고 유일한 교회”안으로 모이는데 필수적인 것들이다. “하나이고 유일한 교회”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가톨릭 세례와 성찬례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여기서는 후자만 간단히 보고자 한다.
가톨릭 세례: 가톨릭 교리에서 물로 주는 “세례”는 비성경적일 뿐만 아니라 매직중의 매직이다. 가톨릭에서의 세례는 세례를 받으면 죄를 용서받고,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 자녀가 되며, 교회와 한 몸이 된다고 한다. 반면에 개신교의 세례는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용서함 받고 의롭게 된 자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받는 것이다(마 28:19-20).

가톨릭의 세례에 대해 <가톨릭교회교리서> 두 항만 보자.
1265 세례는 모든 죄를 정화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 신자를 “새사람”이 되게 하며,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그리스도의 지체,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 성령의 성전이 되게 한다.
1267 세례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일원이 되게 한다. “우리는 서로 지체입니다”(에페 4,25). 세례는 교회와 한 몸이 되게 한다. 세례대에서 국가와 문화, 인종과 성별 등, 모든 자연적 인간적 한계를 초월하는, 신약의 유일한 하느님 백성이 탄생한다…
이 교리서에 명시된 것처럼 가톨릭의 세례는 모든 죄를 용서받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세례대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탄생하고, 가톨릭의 ‘하나이고 유일한 교회’와 한 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앞에 지적한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용서함 받고, 의롭게 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말하고 있다(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얼마나 큰 차이인가?
가톨릭의 세례성사의 교리는 하늘 나라에 가냐 못가냐의 문제이므로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누가 가톨릭이냐? 누가 개신교냐?가 문제가 아니다. 누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성경 말씀대로 믿었느냐 아니냐에 따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안 되고가 판가름 나는 것이다. 그런데 가톨릭의 세례성사는 성경에서 벗어난 비성경적인 교리로 하늘 나라에 가지 못할 다른 복음을 말하고 있다(갈 1:6-9).

가톨릭 성찬례: “성찬례”에 관해서도 간단히 살펴보자. 개신교에서 성찬례는 고린도전서 11장의 말씀대로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기념하고 지내는 것을 중심으로 성찬예배를 드린다. 하지만 가톨릭은 매주든 매일이든 성찬례를 할 때마다 그들은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구약에 제사장들이 드렸던 제사처럼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가톨릭의 신부를 사제 (구약에서 이스라엘 “제사장”을 공동번역서에서는 모두 “사제”로 번역했다)로 부른다. 소위 “사제 신부”라는 것이 “제사장 신부”를 뜻하는 것임을 안다면 성찬례에서 ‘제사장 신부’는 제사를 드리는 역할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톨릭은 성찬예식을 거행할 때마다 제사를 드린다. 하지만 성경 히브리서 10장 18절은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고 명백히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사역을 마치시고 휘장이 찢어진 고로 더 이상 제사를 드리지 않았던 초대 교회 사도들과 초대 교인들을 생각해보라. 이것을 전통으로 다시 세운 것은 다른 전통을 세우고 다른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한 가톨릭은 요한복음 6장에 상징으로 말씀하신 “떡과 포도주”를 이 제사와 연결해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가톨릭 [교령 24]예 따르면, 교회 일치운동으로 하나 되면 다 같이 “온전히 또 순수하게 가톨릭적”인 성찬례에 참여해야한다는 것이다.

가톨릭은 성찬례에 대해서 ‘화체설(化體說-transubstantiation)’을 주장한다. 화체설이란 성찬예식에서 사제 신부의 축성 기도를 통해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보자.

1333 성찬례 거행의 중심에 놓여 있는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 청원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 빵과 포도주의 표징은 신비롭게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면서도 창조계의 좋은 생산물이라는 의미도 잃지 않는다….
이런 제사에 덧붙여 가톨릭의 성체성사는 이를 받는 신자에게 은총을 더해주고 은총을 보존해 주는 역할을 갖는데 이것 또한 비성경적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가톨릭의 세례나 성체에 대한 가르침이 성경에 어디에 있는가? 이는 성경에 나타난 것보다 성경이 기록된 이 후에 유명하다고 하는 사람들(소위 가톨릭 박사나 교부들)에 의해 기록한 글을 따라 전통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또한 그 전통과 함께 성경을 재해석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톨릭의 교리는 성경에 “더하기 교리” 혹은 성경에 “덧붙인 교리”라고 말한다. 가톨릭의 교리는 성경과 성전(聖典- 성스러운 전통)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성스러운 전통이라 하더라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리고 예수님의 사도들이 말씀하는 성경의 말씀과 상반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가톨릭의 전통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것들이 “더해진 것이다.” 마치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라 믿지 않고 그들의 전통을 만들어 성경에 더해서 믿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것처럼 가톨릭도 전통을 덧붙이고 있는 것이다.
성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가톨릭의 세례와 성찬례가 비성경적이라는 것을 직시(直視)하게 될 것이다. 이런 교리가 바로 가톨릭 일치운동의 실체이고 핵심적인 것들이다. 일치운동으로 하나가 된다면 가톨릭 일치운동 [교령 24]에서처럼 이를 따라 행하게 될 것인데, 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가톨릭 일치운동에 함께 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이 글 서두에 언급한 5가지의 결과가 어떻게 나왔단 말인가? 참으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피와 땀으로 고수해온 하나님의 진리인 성경말씀을 우리는 계속 사수해야만 할 것이다. 다음에는 가톨릭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성경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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