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고대연구 > 가슴 답답할 울(鬱)
고대연구독자기고오피니언

가슴 답답할 울(鬱)

[오피니언] 송태정 목사/ 순복음해남교회, 서예작가 – <11회>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이후 울화병이 왔다는 글자

인간의 타락이후 생명나무(木)와 선악과(木)가 있는 에덴동산 수풀(林)에서 엎드린 하와(勹) 위에 아담(大)이 밟고 서 있는 모양으로 답답하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글자….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병중에 ‘화병(火病)’이 있는데, 원래는 ‘울화병(鬱火病)’병이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에도 등재되어 있는 질병이다. 이 울(鬱)자가 ‘답답할 울, 억울하다 울’자이다. 그러니까 울화(鬱火)병은 마음 속에 불이 가득차서 답답한 병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갑골문학자들은 이 글자의 뜻은 ‘가슴이 답답하다’, ‘괴롭고 답답하다’,‘억울하다’, ‘막히다’, ‘원망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답답한 울화병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일까? 지금의 답답할 울(鬱)자는 맨 처음의 갑골문과는 너무나 많이 변형되어버렸기 때문에 그 원래의 뜻을 알기에는 무리이다. 그렇지만 최초의 한자인 갑골문을 보면 그 뜻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게 창제되어졌던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위의 갑골문의 답답할 울( )자를 보면 에덴동산 중앙의 대표적인 나무인 생명나무(木)와 선악과(木)가 있었던 수풀(林)에서 있었던 사건을 나타낸다. 그리고 아래에 엎드리고(勹,伏)고 있는 사람은 하와를 가리키고 있고, 그 위에 서서 다스리고 있는 사람은 족장 아담(大)을 가리키고 있는 사건으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다스리게 하셨으므로 하와가 답답하게 되었다는 글자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답답할 울(鬱)자에 대하여 가장 자세하게 해석했던 사람이 바로 갑골학의 대학자인 우성오(于省吾)이다. ‘갑골문의 울자는 수풀(林)안에 사람(大)이 구부린 사람(勹)으로 구성되었으며, 이 글자는 위에는 사람(大)을 따르며 아래에는 구부린 사람을 따르며, 구부린 사람은 즉 엎드린다(伏)의 근본자이다. 이로 말미암아 보이는 것은 울( )자는 사람 아래 엎드린 사람을 따르는데, 아래의 상형은 한 사람이 땅에 굽어 엎드려 있으며, 위에 상형은 사람이 바로 서서 그 척추 뼈가 있는 곳을 밟고 있는 모양을 본 뜬 것이다. 그 수풀(林)을 따르며, 당연히 이는 들 밖에 있는 수풀 가운데이다. 고대 서적의 해석에서 울(鬱)은 ’‘막혀있다’, 원망하다, 괴롭고 답답하다, 가슴이 답답하다‘라는 뜻으로 쓰였다.’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갑골문의 어떤 학자들도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허신의 「설문해자」에는 ‘림(林)은 평평한 땅에 우거진 나무가 있는 곳을 일컫는다. 두 개의 나무(林)로 구성되었다.’라고 했다. 이것은 두 개의 나무(林)로 많은 수풀을 이루고 있는 에덴동산을 상징할 수도 있고, 두 개의 나무( )로 구성되었다는 것은 바로 에덴동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과 두 나무를 상징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허신은 수풀 림(林)자가 평평한 땅에 있었다고 한다. 성경에 ‘에덴’이라고 하는 단어는 수메르에서 유래했는데 그 뜻이 ‘평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허신이 림(林)자에 대해서 ‘평평한 땅에 우거진 나무가 있는 곳’이라고 하는 것과도 동일한 것으로 유토피아인 ‘에덴’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수풀 림(林)이 에덴동산의 선악과 생명나무가 있는 에덴이라고 하는 것은 지난 번 ‘금지명령사 말라 불(弗)’자에서 자세하게 언급했었다. 그리고 생명나무(木)와 선악과(木)가 있는 곳에 가는 것을 금지한 글자가 금(禁)자는 전국문자에 보이며, 여성인 하와가 그곳에서 선악과 열매를 탐하고 욕심을 냈던 글자가 탐할 람(婪)자는 최초의 문자인 갑골문에도 보인다.
그렇다면 답답할 울자에 있는 큰 대(大)자는 과연 최초의 인간 아담이 될 수 있는가?
그렇다. 갑골문에서 큰 대( )자는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그들의 최조의 조상인 족장을 나타내고 있는 글자이다. 고대 아시리아 왕들 중에는 자신들이 그들의 조상인 아다파(아담)를 빼어나게 닮았다고 자랑하거나 심지어 아다파(아담)의 동상을 세워 놓았다는 기록도 있는 것으로 볼 때 큰 대(대)자는 인류 최초의 조상인 아담이며, 중국에서 최초의 남자인 복희(伏羲)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구부리고( )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하와가 될 수 있는가? 그렇다. 갑골문에 나오는 여자 여(女)자는 거의 99%가 다 무릎을 꿇고 있는 글자이다. 필자가 우성오 주편의 《갑골문자고림》에 나오는 여(女)를 조사한 결과 단 두 글자만이 무릎을 꿇지 않고 구부리고 있는 글자였다. 그리고 갑골문에 ‘온당하다’,‘평안하다’는 타(妥)자가 있다. 이것은 위에 있는 하나님의 손(爪)으로 여자(女)를 무릎 꿇게 한 것이 온당한 것이며, 이렇게 되어질 때 평안이 온다는 글자이며, 그래서 창세기3장 16절에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하신 것을 증거하고 있는 글자이다. 갑골문에서 여자를 여(女)자로 쓰고 있지만, 두 사람이 쫓아가는 종(从,從)자나 두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절(㔾㔾)자나 구부리고 있는 구(勹)자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는 글자이기 때문에 구(勹)자는 얼마든지 여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글자이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필자가 한자를 다루다보니 유교 근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 필자는 아내가 응답을 받아서 결혼을 했다. 그리고 벌써26년째이다. 그렇지만 날마다 아내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애처가(愛妻家)에 불과한 사람이다. 그동안 유교주의에 물든 이 사회는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고 하여 모든 책임을 여성들에게 전가를 시켰다. 그런데 필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여자는 남자 하기 나름이라’고, 왜냐하면 남자는 고집을 피우면 죽을 때까지 가는 경우를 수 없이 보아왔다. 그렇지만 여성분들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 세 마디면 그렇게 고집이 오래 갈 분들이 없는 연약한 그릇이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게 된 이후 하와만 다스림을 받는 답답한 존재(鬱)가 된 것이 아니라 아담과 그의 자손으로 태어난 모든 남자들도 가정을 지키고 먹여 살리기 위해서 직장이나 모든 인간관계의 삶에서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울화병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 그들에게 다가온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는 죽음이 온 것이 맞지만,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됨으로 다가온 것 중에 하나가 가슴이 답답한 울화병도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새해를 맞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함으로 가슴 답답한 인생을 살아가지 말고, 사도바울처럼 항상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행함으로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쁨이 충만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복음으로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예수님을 가졌으면 모든 것을 다 가진 존재로서 가슴 답답한 울화병을 가진 자들을 주님의 위로와 사랑으로 전인치유의 역할을 잘 감당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야겠다.

댓글 남기기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

Previous Next
Close
Test Caption
Test Description goe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