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선교와 난민

  • 09/10/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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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다큐멘타리] 최하영 목사/ GMS 우크라이나선교사 – <6회>

선교 유럽 아닌 유럽 선교가 맞는 이유…

필자가 사역하는 동유럽 우크라이나는 2014년 상반기에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자치공화국이 러시아에게 빼앗김과 러시아의 개입으로 인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내전으로 인해 많은 국내난민(실향민, Internally Displaced Persons, IDPs)이 발생하였다. 이에 우크라이나 인구의 3%가 되는 개신교회와 교인들은 최선을 다해 이들 국내난민들을 도왔었다. 필자도 이들 난민들을 직간접으로 돕고 협력하면서 난민의 절박한 상황을 조금 알게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 이후 친서방과 친러의 갈등이 있어왔었다. 우크라이나는 9세기 루시공국(Kievan Rus)을 키예프 중심으로 세우면서 크게 번성하였었다. 그 후 1240년 키예프가 몽골에게 멸망 받은 후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할 때까지 우크라이나는 약 750년 동안 직간접으로 외세의 지배를 받아왔었다. 가톨릭 폴란드의 침입의 방어를 위해 1654년 1월 모스크바 공국(러시아)과 페레야슬라브 조약(Treaty of Pereyaslv)을 맺어 러시아의 도움을 받았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떠나지 않고 1686년 폴란드와 러시아와 사이의 영원한 평화(Eternal Peace) 조약을 맺어 드네프르 강 동쪽을 러시아가, 드네프르 강 서쪽을 폴란드가 통치하면서 드네프르 강줄기를 기준으로 서쪽은 친서방으로, 드네프르 강 동쪽은 친러가 되었다. 2013년 말이 되면서 외환의 보유고가 터무니없이 부족해지자, 친러 정부는 EU와 IMF보다 러시아로부터 차관을 들어오기로 하였다. 이 결정에 우크라이나의 야권과 우익· 반러· 친서방 세력들은 우크라이나 경제가 완전히 러시아에 예속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2014년 1월 이후부터 10만명이 넘는 시위대가 유로마이단에 모였다. 2월 18일부터 몇 일간 102명이 죽고 1800명이 부상당하는 최대의 유혈사태가 일어났다. 이에 의회는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친서방 과도정권을 수립하였다. 한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크림자치공화국 세바스토폴의 러시아 흑해 함대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2014년 2월 28일 크림자치공화국의 수도 심페로폴 공항을 무혈 점령하여 러시아 크림 인민공화국을 세웠다. 이어 2014년 4월 13일 친러 세력이 많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도 분리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내전으로 번졌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국내난민(실향민)은 약 2백만영이나 발생하였던 것이다.

이이 대해 2016년 1월 파리제일장로교회 주최 한인선교사 선교난민포럼에 보고하면서 또 다른 난민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 시리아의 내전 이후 2015, 16년 어간에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유럽의 사회에 많은 변화가 생겨났던 것이다. 이에 필자의 제안으로 유럽으로 온 많은 난민들을 위한 선교적 네트워크를 위해 에이펜(A-PEN, Arab-Persian Europe Network)을 조직하여 현재 215명의 선교사와 전문가들이 텔레그렘(Telegram) 방을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매년 2월 초에 포럼을 하고 있다.

난민은 핍박과 전쟁, 폭력으로 인해, 인종과 종교, 국적, 정치적 의견,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의 두려움 때문에 고국으로부터 탈출한 자이다. ‘난민지위에 관한 협약’(Convention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 이하 난민협약) 제1조에 의하면 ‘무국적자’까지도 난민으로 취급하고 있다. 또한 난민과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지만 국경을 탈출하지 못한 국내난민과 망명자, 인도적 지위자(humanitarian status) 등을 포함한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 14조 ‘핍박으로부터 다른 나라들에 망명을 찾는 자들의 권리를 인정한다’를 근거로 1951년 7월 난민협약을 채택하였다. 이 난민협약에 따라 유엔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 이하 UNHCR)기구가 세워져 난민을 보호하고 각 국가의 적용을 돕고 있다. 2020년 현재 UNHCR은 126개국에 9,700여명의 직원이 약 5,900백만명의 난민을 보호하고 있다.

난민의 존재 역사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성경에 보면, 야곱(이스라엘)과 그의 가족 70명은 기근(자연재해)으로 인해서 난민이 되어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이주하였다(창 48: 27). 430년간 살면서 약 200만명의 큰 민족을 이루었으나 점점 심한 애굽의 핍박으로 인해 하나님께 부르짖자 모세를 세워 구원받았다. 이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출애굽을 하여 40년 광야 여정 후 가나안에서 정착할 때에 분명히 또 다른 난민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나그네를 압제와 학대하지 말고 자녀 같이 여기며 자기같이 사랑하라’고 하였다(출 23: 9; 레 19:33~34). 그리고 곡식을 거둘 때에는 거류민을 위해 밭 모퉁이는 남겨두고 떨어진 이삭은 줍지 말아서(레 19: 9, 10) 이들이 스스로 ‘사회의 일원’으로 적응해 가도록 배려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마 25: 40)이라고 하면서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한 것’(마 25: 35~35)을 재림 때에 심판의 기준으로 삼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 육적·영적 상처를 받은 이들 난민(나그네)을 선한 사마리아인같이 이웃으로 자비를 베풀라고 하였다(눅 10: 30~37).

66~73년 로마의 핍박으로 인해 유대인은 흩어져 그 중 유럽으로의 많은 이주가 있었다. 그 후 게르만족의 이주와 슬라브족 이주, 이슬람 정복으로 인한 이주, 몽골-투르크족의 팽창으로 인한 이주, 오토만 투르크 침입으로 인한 이주 등이 있었다. 15세기 이후는 종교개혁과 유럽의 종교전쟁 등으로 동과 서, 남과 북의 이주가 일어났었다. 퐁텐블로 칙령(Edict of Fontainebleau: 1685년 10월)으로 수십만 명의 칼빈주의 위그노들이 핍박을 피해 프랑스에서 떠나야 했다. 그리고 십자군때부터 유럽에서 수 차례 유대인 박해가 자행되면서 유대인의 대규모 이주가 있었다.

프리티오프 난센(Fridtjof Nansen)이 이끈 국제 연맹(League of Nations)의 ‘난민 고등 위원회’가 1917년 러시아 혁명과 이후의 내전(1917-1921)으로 발생한 150만여 명의 피난민을 구호하기 위해 1921년에 창설하였다. 1943년 연합국은 국제연합 구제부흥 사업국(United Nations Relief and Rehabilitation Administration, 이하 UNRRA)을 세워 유럽 일부와 중국의 700만명의 실향민에게 구호 활동을 하였다.

1950년 12월 UNHCR가 UNRRA을 계승하였다. 2차대전 이후 50,60년대 유럽의 식민지로 있던 많은 이주 및 난민들이 유럽으로 값싼 노동력으로 이주하였다. 대개 모로코와 소말리아, 이집트로부터 이탈리아와 그리스로 이주해 왔고, 모로코와 알제리(Algeria), 튀니지(Tunisia), 라틴아메리카로부터 스페인과 포르투갈, 프랑스로 이주해 왔고,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자메이카로부터 영국에 이주해 왔고, 터키로부터 연맹국이었던 독일로 이주해 왔었다.

그리고 1985년 셍겐 조약(Schengen Agreement)이후 유럽연합(EU)회원 국가와 가족들 간의 자유로운 이주가 있었다. 1997년 더블린 조약(Dublin Regulation)으로 유럽으로의 난민은 더 많아졌다. 2008년 동유럽의 경제위기로 인해 다른 유럽(EU)으로의 대거 이주가 있었다. 2009년 5월 제3세계 노동자들이 유럽(EU) 국가 내에서 일할 수 있는 블루카드(Blue Card)을 적용하면서 더 많은 이주가 있었다. 2015년 1월 유럽(EU-28)에는 3,430만명의 난민 및 이주민이 살고 있는데, 그 중 1,850만명이 비유럽국가로부터 왔다. UN에 의하면 2050년에 2억 3천만 명의 이주민이 생길 것을 전망하였다.
프랑스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 1943 ~ )는 ‘향후 50년 내에 10억 이상의 인류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인 이유로 자기가 태어난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다가 오는 시대는 “이주민의 시대”(Age of Migration)를 맞이 할 것이다.

감사하게도 한국은 UNHCR에 2천만불 이상 기여한 국가들의 모임인 “20+ million club”에도 가입되어 있을 정도로 난민을 받아들이는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2017년까지 난민신청자 9,942명 중 인정 받는 사람은 792명으로 약 4%정도 난민이 인정이 되고 있다. 어떤 연유이든지 집떠나면 고생이라 하는데 이들 나그네에 대해 보다 성경적이고 인도적인 포용으로 많은 난민이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 행복을 누렸으면 한다.

현재 난민 82%가 시리아를 포함하여 10개국에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은 대부분 분쟁지역으로 선교하기 열악한 이슬람 지역이다. 이 지역의 사람들이 유럽으로 들어왔고 들어오고 있다. 이들의 상한 마음을 싸매 줄 선교적 전략이 필요하다.

이에 전략적으로 많은 선교사들이 이들 난민루트를 따라 이동하였다. 따라서 이 유럽에 온 선교사들은 유럽선교사가 아닌 난민선교사로 파송교회와 협력교회, 중보기도자들이 지속적으로 이들을 도와야한다. 그리고 유럽의 디아스포라 한인교회도 이들 선교사와 협력하여 유럽의 나그네된 이 난민들을 주님의 제자로 삼아 유럽 복음화 회복의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필자: 최하영 목사/ hydavidcho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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