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 설탕, 홍차

  • 09/10/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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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야기] 110회/ 김학우 목사/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 »

역사의 판도를 바꾼 조미료 3총사…

잭 터너는 그의 책 “스파이스”(Spice)에서 “향신료는 인간의 욕망이다.”라고 정의했다. 사람의 입맛을 돕고 자극하는 후추와 설탕, 홍차는 인류의 역사를 바꾼 대표적인 기호식품으로 꼽힌다. 후추는 베네치아를 거대 도시와 대항해시대를 열었으며, 설탕은 식민지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홍차는 미 독립전쟁과 아편 전쟁을 일으킴으로 세계의 판도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검은 보석 후추, 대항해 시대를 여는 역사가 담겨 있다.

“고추보다 후추가 더 맵다.” 뛰어난 사람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비유로 표현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검은 보석으로 불리는 후추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향신료로, 세계사를 움직인 원동력이 되어 왔다. 냉장시설이 발달하지 않아 음식물이 쉽게 변질되곤 했던 시기에 육류의 맛과 향을 잡아 주는 후추는 식생활에 일대 혁명을 가져 왔다. 악취가 모든 병의 근원이라고 여겨졌던 시대에 후추는 식품을 넘어 약품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특히 중세시대에는 왕족과 귀족 등 부유층이 후추에 열광하면서 후추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자연히 후추를 비롯한 향신료는 화폐나 보석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후추는 물물교환에 최고 품목이었으며, 세금이나 집세를 낼 때 돈 대신 사용되기도 했다. 지금도 프랑스인들은 물건이 너무 비싸다고 말할 때 “후추처럼 비싸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는 과거에 후추 값이 아주 비싼 것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런 이유로, 후추는 유럽의 열강들이 대항해시대를 여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보다 앞서 베네치아는 중세가 끝날 때까지 400년 동안 후추 무역의 중심지로 부를 누리고 있었다. 중세시대 유럽은 후추를 위해 아시아와 교역할 때 주로 흑해를 경유 콘스탄티노플에 이르는 항로를 이용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항구도시 베네치아로 운반되었다. 하지만 15세기 초 오스만제국이 동로마를 정복하고 무역 로를 봉쇄한 뒤 막대한 세금을 징수하면서 지중해 일대의 후추 무역에 제동이 걸렸다. 후추를 비롯 향신료를 콘스탄티노플과 베네치아를 경유하여 수입하려면 원산지보다 아주 많은 유통과정을 거쳐야 될 뿐 아니라 가격 또한 원산지보다 수십 배가 높았다. 그러자 가장 먼저 포르투갈이 발 빠르게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직접 인도에서 후추를 들여오기 위해 바다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아 대서양을 건너 인도를 찾아 항해한 것은 모두 향신료를 포함 후추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바스코 다 가마가 아프리카 남단을 거쳐 인도항로를 개척한 것이나, 마젤란이 세계 일주를 위한 목적도 있었으나 배후에는 향신료를 얻기 위한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이로 인해 포르투갈은 150년 이상 아시아와 특히 인도의 캘리컷 향신료 시장을 지배할 수 있었다. 17세기 초에 이르자 네덜란드와 영국이 후추 시장에 합류하면서 포르투갈을 밀어내고 암스테르담과 런던이 후추시장의 중심지가 되었다.

달콤한 설탕, 슬픈 눈물의 역사가 담겨 있다.

설탕의 이미지는 달콤함이다. 그러나 설탕의 역사는 결코 달지 않으며, 약소민족들의 슬픈 역사가 묻어 있다. 유럽의 역사에서 정복과 전쟁, 침략의 중심에는 설탕이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슬람 제국에서 유럽으로,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세계사의 패권이 옮겨갈 때마다 승자들은 어김없이 설탕도 함께 장악했다. 설탕이 산업혁명과 공업화의 밑거름이 되었음은 물론, 후추와 함께 고급 조미료로 왕이나 귀족, 가진 자들만이 향유할 수 있었던 식품이었다. 설탕을 11세기 십자군 원정을 통해 유럽에 들어온 이후 17세기까지 약물로 여겨졌으며, 결핵 치료 등 10여 가지 효능을 가진 약재로 쓰일 정도로 신비한 존재였다. 이후 유럽 나라들이 지나치게 몸값이 높았던 설탕을 조달하기 위해 불나방이 불에 뛰어드는 것처럼 너도나도 설탕사업에 뛰어들었다.

설탕을 만드는 사탕수수의 재배와 전파는 대항해 시대개막과 궤를 같이한다. 설탕을 얻기 위한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서는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했다. 유럽 여러 나라들은 더 많은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침략과 정복을 통해 수많은 노예를 끌어 들였다. 설탕과 노예의 이동 경로인 대서양을 사수하기 위해 전쟁과 침략이 반복되었다. 설탕이 지나간 자리는 온통 피와 눈물로 점철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 역사학자 노엘 디어는 “2천만 명의 아프리카인이 노예무역에 희생된 것은 설탕 때문”이라고 했다. 달콤한 설탕의 역사 뒤에는 인권을 유린당한 피압박 민족들의 슬프고도 아픈 눈물이 담겨 있다. 설탕은 입에 달콤하지만 그 속에 담긴 역사는 결코 달콤하지 않다.

유럽 많은 나라들이 식민지를 통해 설탕을 공급했던 것과 달리 독일은 식민지 국가가 거의 없어 설탕을 공급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 중 1747년 독일의 화학자 마르크그라프가 최초로 사탕무로 설탕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함으로 다소나마 충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탕무를 통해 본격적으로 설탕을 재조한 것은 나폴레옹이 대륙봉쇄령을 내리면서 부터였다. 사탕무를 통한 다량의 설탕을 제조하면서부터 노예 공급을 위한 분쟁이 현격히 줄어 들었다. 사탕무 개발은 노예들에게 참으로 기쁜 소식이었다. 독일에서 개발한 사탕무는 공교롭게도 독일의 악성 베토벤(1770-1827-사탕무)“베토”(Beet-사탕무) “벤”(hoven-밭)에게 가장 먼저 붙여졌다.

여유를 주는 홍차, 전쟁의 역사가 담겨 있다.

차(茶)에 대해 말할 때 중국을 빼놓을 수 없으며, 중국은 차에 대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697년부터 영국은 중국으로부터 차를 수입했다. 중국은 이로 인해 엄청난 돈을 벌었지만 반대로 영국은 엄청난 무역적자를 가져왔다. 이에 영국은 적자를 줄이기 위해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 전매권을 이용해 중국에 몰래 아편을 퍼뜨렸다. 영국은 차 판매로 빠져나간 은화를 아편으로 회수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 없었던 청나라는 아편 밀수입과 아편흡연 금지하는 법령은 물론 모든 아편을 몰수하는 한편 관련 외국인들을 추방하기에 이르렀다. 당연한 일이지만, 영국은 당시 막강하던 함대를 동원해 중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다. 당시 중국은 영국군의 힘을 막을 수 없었고 결국 1842년 청나라는 영국과 “남경조약”을 체결하여 홍콩을 넘겨주고, 다섯 개의 주요 항구를 개방하며 보상금까지 지불하는 굴욕을 당해야만 했다.

미국 독립전쟁 또한 영국의 홍차와 무관치 않다. 당시 영국은 프랑스와의 7년 전쟁(1756-1763)을 치르며 국고가 거덜 났다. 영국의회는 1764년 설탕세, 1765년 인지세 등을 통과시켜 식민지 미국에 대한 세금을 잇달아 신설하거나 올렸다. 특히 1773년 도입한 차조례는 영국 동인도 회사에 미국에 대한 홍차 독점판매권과 관세 면제권을 주면서 미국에 대해 높은 관세를 매겼다. 과도한 세금 징수에 반발한 시민들이 1773년 12월16일 보스턴 항에 정박해 있던 배에 올라가 그곳에 실려 있던 차를 모두 바다에 던져버렸다. 한편, 영국은 손해배상을 요구하였을 뿐 아니라 군대를 주둔시키며 식민지 탄압을 강화하며 보스턴 항을 봉쇄하였다. 또한 사건 주모자들을 영국으로 압송하여 재판하겠다는 법을 통과시켰다. 영국정부와 노스 수상은 매사추세츠 자치정부를 해산한 후에 직접 식민지를 지배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미국은 영국이 강경한 식민지 정책을 통해 국가채무를 줄이려는 것에 반발하였고, 결국 1775년 미국 독립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1620년에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가장 먼저 교회와 병원 학교를 설립했다. 1635년 설립된 보스턴 라틴학교와 1636년 설립된 하버드대학이 그 첫 열매였다. 이후 웰즐리 대학 등 수많은 명문 대학들이 세워졌다. 보스턴 차사건과 영국의 부당한 세금, 영국의 식민지 지배에서 미국이 독립을 주도한 사람들은 새뮤얼 애덤스를 비롯, 청교도의 후손들이었다. 영국은102명의 청교도들을 쫓아냈지만, 155년 지난 후 영국은 그들이 쫒아낸 청교도들의 후손들에 의해 미국에서 쫓겨난 결과가 되었다.

필자: 김학우/ 2070czmk@daum.net/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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