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 3국, 베네룩스 3국, 스칸디나비아 3국

  • 10/07/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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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야기] 107회/ 김학우 목사/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

영원한 친구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에겐 영원한 친구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의 이익만이 영원하다.” 영국의 총리를 두 차례나 역임한 “파머스턴”(1784-1865)이 한 말이다. 그의 말은 시대를 초월하여 개인과 국가에 적용되지만 발트 3국, 베네룩스 3국,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3국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발트 3국, “백지장도 맞들면 가볍다.”

리투아니아(Lithuania), 라트비아(Latvia), 에스토니아(Estonia)세 나라를 발트 3국이라 부른다. 세 나라는 노란 자위와 같은 지정학적인 위치로 인해 강대국들의 쟁탈 대상이 되어 빈번히 전쟁터가 되었다. 발트 3국은 십자군전쟁, 리보니아전쟁, 북부전쟁, 나폴레옹전쟁 등 수많은 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쳤지만 약자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18세기 러시아의 지배아래 있다가 제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8년 세 나라가 독립했지만, 제2차 대전 때 다시 소련에 지배를 받았다. 1939년 8월23일, 히틀러와 스탈린은 동유럽을 분할 통치할 것을 전제로 상호불가침조약을 체결했다. 이후 9월 1일 독일은 폴란드 서부를 공격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반면 소련은 9월18일 폴란드 동부지역을 시작으로 1940년 6월15일 발트 3국을 침략했다.

전쟁이 끝나고 한참 지난 후 1988년 “독소 비밀조약문서”가 공개되면서 발트 3국민들은 크게 분노했다. 그 중 에스토니아 인들은 소련이 무너진 1991년까지 3년 동안 광장에서 함께 노래하며 비폭력 평화 시위를 벌였다. 이런 이유로 에스토니아의 독립은 “노래 혁명”으로 불린다. 동시에 발트 3국은 발트의 길, 인간 띠를 만들어 에스토니아의 “노래 혁명”을 통해 독립의지를 표출하기로 뜻을 모았다. 혁명일은 독일과 소련이 비밀조약을 맺었던 50주년이 되는 1989년 8월23일에 실시하기로 했다. 인간 띠는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출발하여 라트비아의 리가를 거쳐 에스토니아의 탈린에 이르는 약 620㎞를 약 200만 명이 노래로 독립과 자유를 위해 투쟁을 벌였다. 노래를 사랑하는 민족들은 많지만 노래를 통해 혁명을 이룬 민족은 드물 것이다. 결국 1990년 3월에 리투아니아를 시작으로 1991년 8월20일 에스토니아가, 8월21일에는 라트비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이끌어냈다. 공교롭게도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10월 3일은 동독이 무너져 동서독이 통일 되었고, 반면에 소련은 1991년12월26일 해체 되었다. 발트 3국은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었지만 독립과 자유에 대한 열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발트 3국은 전체 인구 약 700만 명과 국토 면적은 한반도 4/5에 불과하지만 자유에 대한 공통목표를 가지고 “백지장도 맞들면 가볍다.”라는 정신으로 이웃사촌으로 공존해 가고 있다.

베네룩스 3국, “최대 수비는 공격이다.”

베네룩스(Benelux)란 벨기에(Belgium), 네덜란드(Netherlands), 룩셈부르크(Luxemburg), 세 나라를 지칭하는 말로, 3국의 머리글자(Be, Ne, Lux)에서 따왔다. 세 나라는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런던에 망명정부를 세웠을 때에 관세동맹을 맺으면서 베네룩스 3국이 탄생되었다. 베네룩스 3국은 처음 로마제국의 지배아래 있었고, 중세시대이후 부르고뉴 공국을 거쳐 합스부르크 직할령인 스페인에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나 1581년 네덜란드가 가장 먼저 독립 하였고, 다음으로 1839년 런던 조약을 통해서 브뤼셀이, 마지막으로 1867년 룩셈부르크가 각각 분리 독립하였다. 19세기에 들어와서 베네룩스 3국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근대를 호령하던 최강대국들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해 중립국을 선포한 바 있다. 그럼에도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은 가장 먼저 벨기에를 침공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은 베네룩스 3국 모두를 점령했다. 양다리를 걸치려하다 큰 코를 닥친 세 나라가 선택한 것이 바로 경제적인 동맹이었다. 그보다 두 번의 실패를 통해서 “최고의 수비는 공격이다.”라는 손자병법의 전술로 국가 정책을 확 바꾸었다.

이후 세 나라는 이전과 달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는 것은 물론 유럽의 연합기구들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 앞장섰다. 덕분에 벨기에의 브뤼셀은 유럽연합의 수도가 되었고, 룩셈부르크에는 유럽법원이, 그리고 네덜란드 헤이그에는 5개의 국제법원이 자리 잡아 세계의 사법수도가 되었다. 베네룩스 3국이 유럽에 대한 적극성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베네룩스 3국은 1957년 유럽 경제공동체(EEC)뿐 아니라 지금의 유럽연합이 구성되는 역할도 했다. 베네룩스 3국은 단순한 연합을 넘어 정치적, 경제적으로 협력관계로 서로를 신뢰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4년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형편상 네덜란드 총리가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룩셈부르크 총리에게 부탁하여 그 역할을 대신하도록 한 경우도 있었다.

세 나라는 국가원수가 국왕이나 대공이 다스리는 왕국과 공국으로 입헌군주제인 것이 특징이다. 룩셈부르크는 산지가 많으나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지대가 평탄하여 저지대 국가라 불렸고, 네덜란드나 벨기에라는 국명도 여기서 유래했다.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는 국기까지 서로 닮았다. 삼색 끝부분의 짓은 파란색이 네덜란드, 옆은 파란색이 룩셈부르크국기이다. 그럼에도 베네룩스 3국은 서로 닮은 듯,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룩셈부르크는 2019년도 기준 1인당 국민소득 11,870달러로 세계 1위,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국민소득 또한 4만 불이 넘는 그야말로 유럽의 작은 거인이라 할만하다.

스칸디나비아 3국, “구관이 명관, 그래도 옛 친구가 낫다.”

스칸디나비아 3국은 보통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세 왕국을 의미하지만 핀란드와 아이슬란드와 속령까지 포함하기도 한다. 핀란드와 아이슬란드를 포함한 5개 국가는 노르딕(Nordic)국가라고 부른다. 보통 8세기에서 11세기를 “바이킹 시대”로, 이들은 약 300년 간 유럽에 진출하여 유럽 기독교 문명을 지배하였다. 바이킹족들은 프랑스의 노르망디, 이탈리아 남부와 시실리, 시리아, 키예프, 그리고 영국,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그린란드까지 점령하였다. 930년경 노르웨이 바이킹들은 아이슬란드에 정착한 후 세계 최초로 “알싱”이란 의회를 창설하기도 했다. 965년 덴마크 해롤드 왕과 그의 부하 바이킹들은 잉글랜드를 정복한 후 원시신앙을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하였으며, 11세기 후 영국의 왕가는 바이킹족 출신인 정복 왕 윌리엄 1세의 후손들이다.

1397년 스칸디나비아 3국은 “칼마르 연합”(Union of Kalmar)을 맺었다. 하지만 1448년 덴마크와 스웨덴이 노르웨이를 두고 패권 다툼이 일어났다. 1523년 덴마크가 노르웨이를 지배하면서 동맹은 해체되었다. 노르웨이는 독립을 위해 투쟁을 하였지만 실패하여 1814년까지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다. 노르웨이의 운명은 나폴레옹이 전쟁에 패하면서 다시 바뀌게 된다. 1814년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덴마크 국왕 프리드리히 6세에게 노르웨이가 헌법상 독립국가 지위를 부여하는 조건으로 스웨덴에 이양하도록 했다.

스칸디나비아 3개국은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바이킹 정신”과 “칼마르 동맹”의 동질감을 갖고 있었다. 19세기에는 독일과 러시아와 프랑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칸디나비아 민족 운동을 일으켰다. 특히 1873년부터 제 1차 세계대전까지 시행된 통화동맹에서 3국의 동질감은 더욱 두드러졌다. 더불어 국기에 새겨진 십자가는 동맹을 넘어 종교적인 동질감을 엿볼 수 있다. 제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연대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핀란드와 아이슬란드를 포함한 노르딕 국가로 확장하였다. 3국은 역사적인 체험을 통해 “구관이 명관”, “그래도 옛 친구가 좋다.”고 생각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다. 1953년부터 2008년 사이 스칸디나비아 3국이 한국인을 입양한 숫자는 약 2만4300여 명 정도가 되며, 미국에 살고 있는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이 입양한 한국인의 숫자는 2만여 명으로, 총 4만4300명 정도로 집계되고 있다. 6.25 전쟁 때는 스칸디나비아 3국은 국립의료원까지 세우며 한국을 도왔다.

필자: 김학우/ 2070czmk@daum.net/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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