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 06/07/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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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크시론] 이달을 여는 창 | 발행인 이창배 목사

2020-07월을 여는 창

오늘날 우리는, 지금 겪고 있는 어렵고 힘든 순간들에 사로잡혀있지 말고 떨쳐 일어나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나로 말미암아 일어나도록 하고, 나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나의 이웃과 주위로 확산되게 할 때, 결국은 이 세상, 믿는 자들이 발을 딛고 서있는 모든 땅에서 마지막 날의 그 찬란한 역사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필히 그 고난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가져다주지만, 그 결과는 달게 되리라 믿는다.

누렇게 무르익은 밀밭을 붉게 물들이며 마치 타오르는 저녁노을이 들판에 머무는 듯 진홍빛 양귀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6월을 뒤로하며, 이제는 보라색 빛이 지천에 깔렸다.
녹음이 짙어진 6월말, 수목이 울창한 산기슭의 도로를 주행하며 도로 양옆으로 짙은 보라색 꽃술이 탐스럽게 피어오른 엉겅퀴가 여기저기 군집해 있는 모습을 보았다. 비교적 가시식물로 줄기가 굻고 키가 높이 자라나는 엉겅퀴뿐만 아니라, 야생식물 중에서도 데이지꽃 모양을 닮은 보라색 꽃들이 바람에 흔들거리며, 로변을 온통 보라색 물결로 수놓고 있다.
7월은 보라색으로 시작이 되는가 싶다.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이다. 자연은 신기하게도 변화의 주기를 형성하는가 보다. 지난 6월은 들장미와 찔레꽃이 한창 하얗고, 노랗고, 검붉고, 진홍색의 꽃들로 길거리 곳곳을 장식하더니만 얼마전부터 피어나기 시작한 라벤더 밭은 이미 농익은 보라색으로 가득 넘치고 있다.
우리 동네 도로에는 시 당국에서 조성해놓은 라운드의 한복판, 둥그런 공터에 라벤더 꽃밭을 만들어놓았다. 담당 공무원의 센스가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투명하고도 따가운 여름의 햇살에 한층 더 선명하게 보여지는 라벤더의 보라색 꽃과 향기가 지나는 사람들의 기분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지난 넉 달 동안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의 인적이 뜸해지기도 했거니와 그만큼 자동차의 운행이 줄어들어 공기도 한결 정화된 모양이다. 자연 공간이 예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모양으로 회복이 된 느낌이다. 수목은 더욱 짙푸르고, 새소리는 여기저기 들려지고, 꽃과 꽃 사이를 오가는 나비와 벌의 개체도 많아진 것이 여실하다. 이전에는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이름 모를 야생의 꽃들과 함께 어우러져 자연을 그대로 연출해내는 이 모습, 이 풍경 그 자체로도 마음에 웃음이 자아난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것 같다. 아~ 좋구나.

아직도 먼 일상의 회복

일상의 회복인가? 그야말로 답답한 자가 격리의 시간, 3개월여를 보내는 동안 얼마나 무료하고, 힘이 들었는지 사람들이 더 이상 코로나에 아랑곳 하지 않고 거리로 뛰쳐나오는 것 같다. 예전의 붐비던 사람들의 인파가 쇼핑가를 따라 느껴진다. 동네 공원 놀이터는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로 빼곡하고, 노천카페에도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다만 형식적이나마 거리제한을 지키기 위해 상점 출입의 인원수를 제한하는 것과 상점 카운터에 유리 방어벽을 설치했거나, 출입하는 고객들에게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 한 것 등이 변화 중 변화이다.
생각해보아도, 마스크 착용에 심한 거부감을 느끼던 사람들이, 이제는 피치 못해 하는 것에서 조금 벗겨나 스스로 마스크 착용을 습관화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평소 자유 분망하던 유럽 사람들, 개인적 자유를 최대한 보장받던 서구사람들의 습관적인 행동양식은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우리네 보기엔 아직도 조심성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걱정이다. 때문에 여전히 대인관계의 두려움은 벗어날 수 없다.
문제는 누가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연일 뉴스들은 집단감염의 위험과 실제 케이스를 보도하고 있다. 독일 남부 퇴니에스 도축장에서 일어난 집단감염으로 인해서 소란하다. 작업장의 에어컨을 통해 번진 바이러스로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단 감염이 됐다고 한다. 이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감염이 확산되고 급기야 도시의 7천 명 인구가 통제에 들어갔다.
이는 한 동안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이제 질병의 통제가 가능해졌다고 안도하던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아직 이렇다 할 뚜렷한 방법이 없는 가운데 원칙적이지만 스스로 철저하게 위생관습을 지키는 것 빼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는 스스로 자가 격리가 필요하다. 누가 뭐래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켜야한다. 나의 행동됨에 있어서 누군가 낯선 사람을 배려해 주려는 의지가 사뭇 필요하다. 심지어 아파트의 출입문으로 시작해 여러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위생장갑을 착용하되, 행여 타인에게는 나의 조심이 그들에겐 안심이 된다는 이유가 분명해 지도록 당당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궁극적 뜻을 이룰 것

얼마 전 김연택 박사는 “Coronavirus, History and God’s Mission in the World” 라는 논문을 인용해, AD165-180 사이에 로마제국 당시 인구가 전염병으로 인해 2500만 명이 감소되었는데, 오히려 성도는 50만 명이 더 늘어나고, 교회들이 도처에서 부흥했다는 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전했다. 그 근거로 역사가 유세비오가 주후 253년에 기록한 내용을 인용했는데, 그 내용에 따르면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을 때 성도들과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세상 사람들을 섬김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려운 때에 오히려 확장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아모스 3:6절, “성읍에서 나팔이 울리는데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전염병)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는 말씀을 살펴보자면, 재난과 재앙, 전쟁, 전염병 등 모두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보내셨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현재로 일어나고 있는 이 기막힌 모든 상황 역시도 하나님의 뜻 없이 된 일이 아니라는데 주목해야 한다.
그렇기에 먼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이들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바울의 로마서 8:28절을 근거로 살필 때,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어 나가게 될 것이라 확신하면서, 이에 따르는 결과로,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재앙을 통해 전 세계의 일상을 일시적이며, 또한 일거에 바꾸어 놓은 결과나, 인류가 발전시켜 온 최고도의 현대문명을 자랑하고, 의지케 했던 인간의 모든 교만과 자랑을 일거에 추락시켜 버리는 놀라움이라 보게 된다. 그러지 않고서야 하루아침에 전 세계를 동시다발적으로 뒤흔들고, 일상의 변화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될 만큼의 에너지로 충격을 주었는가 싶다.
오늘날 우리는, 지금 겪고 있는 어렵고 힘든 순간들에 사로잡혀있지 말고 떨쳐 일어나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나로 말미암아 일어나도록 하고, 나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나의 이웃과 주위로 확산되게 할 때, 결국은 이 세상, 믿는 자들이 발을 딛고 서있는 모든 땅에서 마지막 날의 그 찬란한 역사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필히 그 고난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가져다주지만, 그 결과는 달게 되리라 믿는다.

이달의 말씀 ㅣ아모스 3:6
성읍에서 나팔이 울리는데 어찌 백성이 어찌 두려워 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이 성읍에 어찌 임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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