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코로나-<1>

  • 05/05/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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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이창기 목사/ 프랑크푸르트 감리교회-1회

코로나의 성경적 의미, “승리와 영광의 면류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코로나란 이름이 인류의 가장 혐오스럽고 악명 높은 저주스러운 이름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코로나는 인류의 공포의 대상입니다. 코로나란 이름이 바이러스 때문에 아주 왜곡돼 버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본래의 코로나, 승리와 영광의 면류관을 가르쳐 줍니다. 바이러스 코로나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성서의 코로나를 살펴 봅시다.

코로나 바이러스(Corona COVID-19)로 온 세상이 난리입니다. 신문이나 방송도 온갖 코로나 이야기 뿐입니다. 코로나란 말이 성경에 나올까요?
코로나란 말은 라틴어로 라틴어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68회). 코로나를 한글 성경에선 ‘금테’(출 25: 11, 24, 25, 30: 3, etc.), ‘화환’(왕상 7: 29, 30, 36, etc.), 또는 ‘면류관’(대상 20: 2, 에스더 8: 15, etc.) 등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 중 면류관으로 번역된 곳이 가장 많습니다(57회).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코로나란 이름이 인류의 가장 혐오스럽고 악명 높은 저주스러운 이름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코로나는 인류의 공포의 대상입니다. 코로나란 이름이 바이러스 때문에 아주 왜곡돼 버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본래의 코로나, 승리와 영광의 면류관을 가르쳐 줍니다. 바이러스 코로나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성서의 코로나를 살펴 봅시다.
코로나는 권위, 승리와 영광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왕들이 머리에 코로나, 즉 면류관을 썼으며 다윗도 금 면류관을 썼습니다(대상 20: 2). 성소 중의 성소, 지성소의 법궤도 금으로 테를 둘렀습니다. 그것도 코로나입니다. 말할 수 없이 거룩하고 영광스럽기 때문입니다.

1. 성도들의 면류관

면류관은 왕들만 쓰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승리한 성도들에게도 면류관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알기에 상 받도록 달음질 하며, 또한 이 ‘썩지 아니하는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성도들은 노력하며 모든 일에 절제합니다(고전 9: 24-5).
그렇다고 경기하는 자가 법을 무시하고 이기기만을 목표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남자 100미터 달리기 종목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4년 전 올림픽에서 우승한 미국의 칼 루이스(Carl Lewis)와 1년 전 세계 신기록을 수립한 캐나다의 벤 존슨(Ben Johnson)의 대결 때문이었습니다. 이 대결에서 벤 존슨이 9초 79의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칼 루이스를 넉넉하게 이겼습니다. 하지만 불과 3일 뒤 벤 존슨은 금메달을 잃고 맙니다. 금지 약물이 그의 소변에서 검출되었기 때문이지요. 성도들도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합니다(딤후 2: 5).
사도 바울은 성실히 믿음 생활 잘 하는 성도들을 볼 때 마치 면류관처럼 자랑스럽게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라”고 말했습니다(데전 2:19).
성경에는 ‘의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의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자기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의의 면류관은 사도 바울 자신만이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딤후 4: 8).
‘생명의 면류관’도 있습니다. 야고보서에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속하였습니다(야 1: 12). 주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해 ‘생명의 면류관’을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 10).
사도 베드로는 특별히 교인들을 돌보는 지도자들(목사들)을 향해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면류관’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며,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권고합니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벧전 5: 4) 말씀하였습니다.
면류관에 관한 가이사랴의 성 바실(370–379) 주교의 증언은 깊은 감명을 줍니다. AD 320년 동로마의 황제 리니치오가 기독교 신앙 금지령을 내리고 기독교도들에게 우상 앞에 향불을 피우라고 명하였을 때 아르메니아 지역 세바스테(Sebaste)에 주둔하던 로마 제12 군단 번개무장 군단 소속 40명의 그리스도인 병사들은 이에 대해 저항을 하였습니다. 총독 아그리고라오는 이들을 배교시키기 위하여 가장 혹독한 방법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저들의 옷을 벗기고는 눈오는 날 호수의 얼음 위에 앉히고 그곳에서 얼어죽도록 하였습니다. 그 곁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목욕탕을 만들어 놓고 “기독교를 버릴 자는 여기와서 몸을 데우라”고 유혹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40명의 용사들은 거들떠 보지도 아니하고 40의 거룩한 숫자대로 순교의 영광을 얻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들의 몸이 얼어 피가 돌지 못하고 죽게 되었을 때 그 중에서 한 사람이 참지 못하고 뛰쳐 나오면서 “기독교를 배반할테니 살려달라”고 하였습니다. 수직하던 병사들이 그 사람을 더운 김이 모락 모락 나는 목욕탕 속에 들어 가게 하였습니다. 그는 이제 살았다고 기뻐하며 더운 물에 들어 갔지만 심장마비로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 때 한 병사가 하늘을 쳐다보니 찬란한 광채가 하늘로 부터 그 용사들 위에 비쳐오는 가운데 천사들이 손에 손에 빛나고 아름다운 면류관을 들고 내려와서 용사들의 머리 위에 씌워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천사가 임자 잃은 면류관을 들고 하늘로 다시 올라가려 하였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병사는 기독교가 참 신앙임을 알고 “나도 기독교 신자가 되겠소” 소리를 치며 즉시 옷을 벗어던지고 달려 들어가서 40의 거룩한 숫자를 채웠습니다. 성도들은 빛나고 찬란한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얻기 위해 추위를 무릅쓰고 목숨을 아까와하지 않았습니다.
찬송가 135장(새찬송가 150장) 후렴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I will cling to the old rugged cross, and exchange it someday for a crown). 영문을 직역하자면, ‘나는 오래된 울퉁불퉁한 십자가를 붙들리, 미래 어느 날, 그 십자가를 면류관으로 바꾸리….’ 멋있습니다. 성도들의 믿음 생활이, 성도들의 수고와 인내와 헌신과 봉사가 결코 헛되지 않음을 믿습니다. 미래 어느 날, 성도들에겐 그 험악한 십자가를 빛나는 면류관으로 바꿀 날이 올 것입니다.

2. 가짜 면류관

성경에는 주로 진짜 금 면류관이 많이 나오지만, 가짜 금 면류관도 나옵니다. 앞으로 나타나 온 세계에 재난을 일으킬 황충은 그 머리에 ‘금 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계 9: 7)을 썼습니다. 금이 아닙니다. ‘금 같은 것’입니다. 면류관도 아닙니다. ‘면류관 비슷한 것’입니다. 비슷하다는 말은 진짜가 아니란 말입니다. 가짜 금 면류관은 금 면류관 비슷하지만 금 면류관이 아닙니다. 순금 면류관처럼 영광과 권세가 있는 듯 하지만, 순금같이 오래 가지 못합니다. 거기에 속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번에 온 세계를 공포에 넣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그 모습이 ‘왕관’ 쓴 것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름은 코로나, 면류관이지만, 빛나는 영광스러운 면류관이 아닙니다. 공포의 면류관 코로나입니다. 무시무시하고 가증스러운, 그래서 지금 지구에 사는 인류에게 코로나는 자랑스러운 이름이 아니라 ‘악명 높은’ 이름이 되었습니다.
황충의 재앙은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와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 넣고 불안에 떨게 하는 면에서 비슷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의 강도는 가히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계 9: 5). 더구나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계 9: 6) 말씀합니다.
황충 재앙이 쓴 면류관은 가짜입니다. 금이 아닙니다. 금 같은 것입니다. 면류관도 아닙니다. 면류관 비슷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각종 비싸거나 가치있는 것에는 항상 가짜가 있지요. 루이비똥 가방이 그렇고, 진주가 그렇고 각종 보석들이 그렇습니다. 싸구려 물건엔 가짜가 없지만, 세계 최고의 명품들은 모두 가짜가 있습니다. 가짜가 있다는 말은 진짜가 있다는 말이고 그 진짜는 정말 비싸고 좋은 것이란 말이 됩니다. 이단이 많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역설적으로, 기독교의 복음 진리가 정말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복음이 정말 귀하다 보니 가짜들, 이단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이단들은 복음 비슷하게 꾸미나 복음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단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성경에 가짜 금 면류관이 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진짜 금 면류관은 말할 수 없이 보배롭고 영광스럽고 가치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시고 준비하시고 당신의 자녀들에게 주실 면류관은 참 보배롭고 영광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의의 면류관’(딤후 4: 8)을 얻기 위하여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고 로마 근교에서 목이 잘려 기꺼이 순교를 당했던 것입니다. 많은 예수 믿는 성도들이 모든 시험을 참고 견디는 것은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함입니다(약 1: 12).
주의 종들이 교회와 성도들을 섬길 때, “부득이함으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않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벧전 5: 2) 하는 것도 목자장 예수님이 오실 때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 위함입니다(벧전 5: 4).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죽도록 충성하는 것도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계 2: 10).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이 귀한 믿음을 굳게 잡아 아무나 우리의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해야 될 것입니다(계 3: 11).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필자: 이창기 목사는 현재 프랑크푸르트 감리교회 담임목사로 사역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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