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걸음으로 새기고 온 온고지신(溫故知新)…

  • 05/03/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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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저널] 프랑크푸르트교회협의회, 목회자수련회 ‘이모저모’ 

계시록 일곱교회 1차 답사, 4개 교회를 돌아보다

프랑크푸르트교회협의회의 회원들과 명예회원들로 구성된 2020년 프랑크푸르트 목회자수련회가 지난 2월10일(월)부터 14일(금)까지 터키의 이즈미르를 중심으로 소아시아지역 4개 교회를 답사하는 프로그램으로 열렸다. 이번에는 소아시아지역 일곱교회 가운데 1차로 4개 교회를 돌아보는 코스로 전체 4박5일간의 일정으로 14명이 참가했다.

에페소 셀수스 도서관 유적 앞에서 프랑크푸르트 목회자 부부

지난 2월10일, 월요일 오후 3시, 선 익스프레스 항공기편으로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이륙해, 터키의 이즈미르공항에 저녁 8시 경에 도착한 일행은 공항에서 미리 예약해놓은 렌트카 3대로 시내에 위치한 라마다 호텔까지 이동, 저녁식사를 마치고 첫날 여장을 풀었다.

둘째날 오후 일정은 이즈미르 시내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서머나교회의 유적을 답사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탐방에 들어갔다.

오늘날 이즈미르는 초대 교회가 있던 도시, 서머나(Smyrna)의 현재 이름이다. 이 도시의 이름은 1923년 터키 공화국이 건국되면서 이즈미르(Izmir)로 바뀌었는데, BC 700년 전에 살았던 그리스 최대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쓴 호머의 고향으로써 이곳에서는 BC 3,000년부터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에게 해의 진주, 아시아의 사랑, 아시아의 꽃, 아시아의 면류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항구도시이다.

초대 교회 시대의 서머나(Smyrna)에는 사도 바울의 전도 활동으로 기독교 공동체가 세워졌으며, 사도 요한의 제자였으며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캅이 그의 나이 86세에 순교하였던 곳에 폴리캅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이날 우리 일행들은 폴리캅교회를 찾았다. 교회당 안에는 폴리캅이 순교당하는 성화가 제단 앞 천정에 비스듬히 그려져 있어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이날 오후에는 서머나 아고라 유적을 방문하고 하루 일정을 마쳤다.

다음날 12일 수요일, 우리 일행은 아침 일찍 호텔을 출발해 빌라델비아교회 유적지 탐방에 나섰다. 요한계시록에서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런 모든 환란을 잘 이겨낸 충성된 자(계 3:7-13)들이라고 하는 칭찬을 아시아의 7교회 중 유일하게 들었던 교회이다. 역사적으로도 빌라델비아는 오스만 터키의 침략에 저항하며 비잔틴 제국의 최후 보루로써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알라세히르(Alaşehir, 붉은 성읍)라고 불리고 있고, 시내에 교회 유적으로 기둥 3개만 남아있어, 우리는 그곳에서 기도를 하고, 끝까지 신앙절개를 지킨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대한 감동이 밀려왔다.

이어진 일정으로 오후에는 사데교회를 찾아나섰다. 현재 지명은 사르디스(Sardis)이다. 이곳에는 당시의 번영을 상징하듯 웅장한 고대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어 당대의 도시 규모가 상당했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과 은을 사용하여 동전을 만들어 사용한 부유한 도시로 재정적인 부유함 속에서 아르테미스 여신을 숭배하였던 모든 고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도덕적으로 방탕한 도시였다. 요한계시록에서 “사데 교회는 살았으나 죽은 교회”라고 책망을 받았다.

아르테미스 신전의 남쪽 열주를 지나면 이 교회로 통하게 되어 있는데, 교회당은 단순한 홀(Hall)의 형태를 띠고 있고 후진(後陣, 교회당 동쪽 끝에 움푹 들어간 반원형 부분)에는 창문이 있었습니다. 북쪽에는 작은 문이 있어서 안뜰로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는 교회당 안에서 당시 사데교회를 지키며 자신의 의복을 더럽히지 않으면, 끝내 흰옷을 입는 상급을 받게 될 것이라고 칭찬을 들었던 성도들의 참 신앙을 오늘에 본받자고 다짐을 했다.

마지막 일정은 13일, 목요일 에베소를 탐사하기 위해 일찍 출발했다. 에베소의 유적들은 셀추크(Selcuk)에서 십 리도 채 못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에페스(Efes, Ephesus)는 기원전부터 번창했던 고대 도시국가로 지금은 바다로부터 약 4 Km 정도 내륙에 있지만 당시 에페수스로 불렸던 이곳은 번창했던 항구도시였다. 지금도 그 때의 찬란한 유적들이 남아서 눈길을 끌었다.

사도 요한에 관련된 전승이 전해내려오는 도미티안 황제의 신전은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별하기 위해서 신전 앞에 세우고 참배를 강요했다고 한다. 사도 요한도 이곳으로 끌려와서 도미티안 황제의 신전 앞에서 참배를 드리도록 강요받았지만 이를 거절해 펄펄 끓는 기름 속으로 밀어 넣어졌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죽지 않았으므로 그를 밧모 섬으로 유배시켰다고 하는 전설이다.

남쪽 입구 외곽에 있는 누가의 무덤을 찾았다. 누군가 관리하고 있지 않아 방치된 채 있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또한 요한계시록의 저자인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는 사도 요한기념교회를 둘러보았다. 매우 규모가 컸던 교회유적을 둘러본 후 일행들은 그곳에서 산중으로 약 8km 정도 떨어진 성모 마리아의 집을 둘러보는 것으로 1차 탐방을 마무리 지었다. 오랜시간 역사의 부침을 거듭한 소아시아 지역의 일곱교회 가운데 4개 교회의 역사를 둘러보면서 짧은 4박5일의 일정이었지만, 목회자로서 이 시대 감당해야할 사명에 대해서 다시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유크=이창배/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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