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세계관의 이해<7>

  • 10/09/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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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저널] 최용준 목사/ 한동대 교수 <7회>

2. 기독교 세계관

하나님의 나라를 잘 보여 주는 것은 마태복음 13장에 나타난 다섯 가지 비유이다. ‘씨 뿌리는 비유’, ‘가라지 비유’ ,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 , ‘감춰진 보화’와 ‘진주 비유’, ‘그물 비유’와 ‘추수의 비유’… 이 그림 전체적인 모습을 모으야 한다.

2-2 우주적인 구속

씨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말씀이 뿌려질 때 우리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가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 우리 마음이 길가 밭과 같이 굳어 있거나 돌밭이나 가시밭처럼 여러 걱정과 염려가 있으면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지만 좋은 밭이면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 또한 두 번째 ‘가라지’ 비유는 하나님 나라에는 언제나 ‘방해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해가 있을지라도 결코 낙심해서는 안 된다.

세 번째 비유인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는 아무리 방해가 있어도 하나님의 나라는 신비롭게 성장하고 ‘확장’됨을 가르쳐 준다. 마치 태아가 열 달 동안 어머니 뱃속에서 자라듯 그리고 태어난 이후에도 매일 매일 조금씩 성장하듯 비록 천국은 처음 시작할 때는 미약한 것처럼 보여도 마침내 크게 자라게 되므로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겨자씨는 매우 작은 씨앗이지만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양적 성장을, 누룩은 빵을 부풀게 하므로 질적인 성장을 의미한다. 아기가 육체적으로 자라면서 정신적으로도 성장하는 것과 같다.

네 번째 ‘감춰진 보화’와 ‘진주’ 비유는 이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가치’있는가를 깨우쳐 준다. 전자는 밭을 갈다가 우연히 땅속에 있는 보화를 발견한 것처럼 의도하지 않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진리와 가치를 깨닫는 경우이지만 후자는 진주 장사가 가장 비싼 진주를 의도적으로 찾고 또 찾다가 마침내 발견한 것처럼 천국의 진리를 찾던 구도자가 마침내 발견한 경우를 말한다. 어떤 경우이든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살지라도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가장 귀한 보화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마지막으로 ‘그물’ 비유나 ‘추수’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최종적 ‘완성’ 및 최후의 심판을 보여 준다. 고기를 잡고 돌아온 어부는 그물로 잡은 고기들 중 좋은 생선은 모으지만 나쁜 물고기는 버린다. 추수 때가 되면 농부는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지만 쭉정이는 불에 사를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산 그 분의 백성들은 영원한 축복의 나라에 들어가지만 그렇지 못한 악인은 결국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다섯 가지의 그림을 모두 모으면 하나님 나라의 전체적인 모습이 들어나게 된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하나님의 나라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예수께서는 3년 동안 천국에 관해 선포하시고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현재적으로 임하여 타락한 세상이 회복되는 모습을 여러 방법으로 보여 주신다. 가령 악한 귀신을 쫓아내신 것은 하나님 나라에는 귀신이 있을 수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도 살린 것도 천국에는 병이나 죽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배고픈 군중들을 먹이신 것은 하나님 나라에는 굶주림이 없는 풍요함이 있음을 보여준다. 갈릴리 호수의 풍랑도 잠잠케 하시고 심지어 그 위로 걸어오신 것은 천국에는 세상의 혼돈과 모든 문제들이 다 평정됨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 현재적으로 임한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성경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동시에 미래성도 보여 준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already) 우리 가운데 있지만 아직 완전히 완성되지는 않았다는(but not yet)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때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아기와 같다. 아기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아직 태어나지는 않았다. 현재성과 미래성이 공존하는 것이다. 이처럼 천국은 지금 실재하기도 하지만 장차 완성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사역과 성령의 역할은 무엇이 다를까?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다. 먼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 사흘 만에 부활, 승천하심으로 구속을 ‘성취’(accomplishment)하셨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구약의 모든 언약과 예언을 단번에 성취하였기에 다른 제사나 희생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성령은 왜 오셨을까? 성경은 예수께서 성취하신 구속의 역사를 개개인에게 ‘적용’(application)하시기 위해 내려오셨다고 말한다. 가령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을 깨닫게 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다. 그 후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우리는 거듭나게 되며(regeneration)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고 죄를 회개하게 된다. (faith/repentance) 그러면 성령께서 우리를 죄 없는 의인으로 간주해 주시고 (justification)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해 주신다. (adoption)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을 성령께서는 계속해서 거룩하게 하시고 (sanctification) 훈련시킨다. (perseverance) 그리하여 마지막에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게 하심으로(glorification)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신다.15
동시에 성령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인 교회의 주인이시다. 성령의 오심으로 예루살렘 최초의 교회가 탄생한다. 그리고 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교회는 복음의 증인이 되었고 무서운 박해도 이겨냈으며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서로 지체가 되어 돌아보며 섬기게 된다. 나아가 교회는 세례를 받은 성도들이 한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의 공동체가 된다. 또한 교회는 모든 인종과 민족, 문화와 언어를 초월한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가 된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계속해서 하나 되어 세상의 빛이 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데 사용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먼저 밑의 선은 이 세대의 선이다. 이 선은 창조에서 시작되었으나 타락을 거쳐 결국 예수님의 재림으로 끝나는 현재의 피조계를 의미한다. 그 위에 있는 선은 하나님 나라의 선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이 선은 예수님의 초림에서 시작되어 재림 이후에도 영원토록 계속된다. 현재는 이 두 선이 공존한다. 그리고 이 두 선은 도저히 화합할 수 없는 대립관계(antithesis)이다.

각주

15) John Murray, Redemption Accomplished and Applied, Grand Rapids: Eerdmans,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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