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세계관의 이해-<4회>

  • 06/06/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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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저널] 최용준 목사/ 한동대 교수

2. 기독교 세계관

이제 기독교 세계관의 창조에 대해 살펴보겠다. 구약성경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만물의 궁극적인 기원은 창조주께 있다는 말이다. 이 세상의 모든 물건들은 만든 사람이 있듯이 이 우주도 설계하시고 만드신 분이 있으며 그 분의 전능하심과 절대주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2-1 창조와 타락

이러한 세계관들 중 가령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살려고 노력한다. 성경적 세계관은 마치 하나의 나침반이나 지도 또는 내비게이션처럼 인생이라고 하는 우리의 항해를 궁극적인 목적지인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해 준다. 다른 말로 정리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라는 안경을 통해 하나님과 자신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고 성경의 기준을 따라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성경적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크게 창조(creation), 타락(fall into sin), 구속(redemption) 그리고 완성(consummation)이라는 주제로 설명할 수 있다.13 이것을 하나씩 간단히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다.

창조는 먼저 만물의 기원에 관한 질문의 답으로 이 세상은 창조주에 의해 설계되고 지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만물의 기원은 우연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해 생물들이 진화되어왔다고 보는 진화론과는 분명히 대조되는 세계관이다. 나아가 성경적 창조관은 원래 이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조화로운 곳이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우주는 하나님의 장엄함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세계는 뒤틀리고 타락하게 된다. 이것은 이 세상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으로 인간의 타락은 결국 세상 전체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뒤틀린 세상이 다시 회복되고 구속되어 빛의 나라가 어둠의 나라를 정복해 나간다. 이것은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으로 타락이 우주적 영향을 미친 것과 같이 구속도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과 우주를 포함한다는 의미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과정이 끝나면 왜곡된 창조의 세계는 완전히 새롭게 변화되며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이것을 그림으로 표시한다면 먼저 창조는 깨끗하고 밝은 하나의 원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form)은 매우 좋았다. 처음 세상은 원래 매우 조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타락(deform)은 검게 된 원으로 표현할 수 있다. 깨끗하던 원이 변질된 것이다. 그 결과 세상의 모든 것은 죄라고 하는 바이러스에 오염되어 병들어 있다.

구속(reform)은 다시 하나님의 나라로 상징되는 깨끗한 원이 타락한 세상을 상징하는 어두운 원을 몰아내는 모습으로 표현될 수 있다. 죄로 오염된 세상이 하나님의 통치로 회복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나아가 세상의 마지막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성경적 세계관을 도형으로 표현한다면 다시 깨끗하고 조화로운 원으로 표시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원은 처음 창조의 원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이 원은 다시 검은 원이 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완전한 상태(transform)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장 36절 상반절에서 다시 이렇게 요약한다. “만물이 그에게서 나왔고, 그로 말미암아 있고, 그를 위하여 있다.” 짧은 문장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만물의 기원과 과정, 그리고 궁극적인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세계의 과거, 현재, 미래와 모든 것이 이 한 문장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저는 이것이 기독교 세계관을 가장 잘 요약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 내용을 좀 더 깊이 살펴보도록 하겠다.

서양의 인사말에도 이러한 세계관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가령 스페인어로 장례식에서 작별 인사를 할 때 ‘adiós’라고 하고 불어로도 ‘adieu’라고 한다. 이 말은 영어로 하면 ‘To God’ 즉 ‘하나님께로 (간다)’는 의미이다. 즉, 돌아가신 분은 이제 하나님께로 가셨다는 뜻이지요. 또한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는 ‘아듀 2018년’이라는 말을 한글로도 사용하는데 문자적으로 보면 이것은 2018년은 하나님께로 갔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과 시간의 마지막 종착역은 하나님께 있다는 세계관이 인사말에서 표현되는 것이다.

이제 기독교 세계관의 창조에 대해 살펴보겠다. 구약성경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만물의 궁극적인 기원은 창조주께 있다는 말이다. 이 세상의 모든 물건들은 만든 사람이 있듯이 이 우주도 설계하시고 만드신 분이 있으며 그 분의 전능하심과 절대주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에 진화론은 만물의 기원에 대해 우연(chance, contingency)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고, 그것이 어떻게 존재했는지에 대해 설명할 수 없으므로 결국 불가지론(agnosticism)이라고 하겠다.

사실 우리가 조금만 주의 깊게 보면 우주가 단지 우연의 산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면서도 질서정연함을 알게 된다. 성경은 이 모든 것이 창조주의 디자인이요 작품이라고 선언한다. 하지만 동시에 창조주와 피조물 간에는 넘을 수 없는 본질적인 경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 경계는 바로 피조물에게 적용되는 모든 창조의 법 또는 질서이다. 창조주는 피조물을 만드신 분이므로 그 법을 초월하며 피조물은 지음 받은 존재이므로 성경은 하나님이 진정한 만유의 주재가 되시므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 분의 주되심(Lordship)과 왕 되심(Kingship)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잠언 3장 6절 참조)

그렇다면 성경은 창조주께서 천지를 어떻게 지으셨다고 말하는가? 그분의 ‘말씀’으로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씀’이란 하나님의 명령인 창조적인 진술로 그 자체가 능력이 있고 주권적임을 창세기 1장은 보여 준다.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니 그대로 빛이 생겨났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는 ‘creatio ex nihilo’, 즉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다른 세계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하고 매우 독특한 사상이다. 그리스 철학에서 나오는 조물주(Demiurge)도 사실은 이미 존재하는 원물질(原物質)로 세상을 만들었으므로 엄격히 말해 무에서의 창조는 아니다.

창세기 1장 26-27절에 의하면 인간은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삼위일체, 즉 한 분 안에 세 인격으로 존재하는데, 인간도 남자와 여자로 지음 받았으나 한 몸이 된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인간이 하나님의 성품을 어느 정도 닮았음을 뜻한다. 전지전능하심이나 영원하심 등은 인간이 닮을 수 없지만 거룩하심이나 의로우심, 자비하심 등은 인간이 어느 정도 공유한다.

또한 인간은 축복을 받아 땅에 충만하고 그 분의 대리자로서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사명을 받았다고 성경은 말한다. 즉 피조계에 담겨 있는 무한한 가능성들과 잠재성을 개발하여 그 분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어야 할 사명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역사의 의미도 발견된다. 즉, 인간은 이 명령에 순종할 수도 있고 불순종할 수도 있지만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순종할 경우 그 문화는 발전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 문화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 결국 자체적인 모순에 빠지게 된다.

각주

13) 이 네 가지 요소를 처음 언급한 학자는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의 영향을 받은 네덜란드의 기독교 철학자 헤르만 도여베르트(Herman Dooyeweerd)이다. 하지만 그는 구속과 완성을 크게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다루었다. 최용준, “헤르만 도여베르트: 변혁적 철학으로서의 기독교 철학의 성격을 확립한 철학자” 손봉호 외, 『하나님을 사랑한 철학자 9인』 서울: IVP, 2005, pp. 55-5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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