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 “몽골제국”, “러시아제국”

  • 05/06/2020
  • 18 Views
[유럽이야기] 106회/ 김학우 목사/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

세계사, 가장 넓고 큰 영토를 지배한 3 제국

대영제국은 “해가지지 않는 나라”란 이름답게 3670만 ㎢의 방대한 땅을 정복하므로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넓고 큰 영토를 지배한 제국이 되었다. 다음으로 칭기스칸이 세운 몽골제국이 3320만 ㎢의 영토를 지배하였으며, 그리고 러시아제국이 2200만 ㎢의 영토를 소유하였다.

전세계 지표면 1/4를 지배한 대영제국

제국으로서 영국은 1583년 튜더 왕조의 엘리자베스 1세가 험프리 길버트(1539-1583)에게 특허장을 준 시기로부터 영국이 홍콩을 반환한 1997년 까지라고 위키 피디아가 기술하고 있다. 특히 영국이 전 세계의 패권을 잡은 것은 나폴레옹 전쟁(1803-1815)이후, 1815년부터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100년 기간으로, 흔히 “팍스 브리테니카”(Pax Britanica)라 칭한다. 이것은 영국에 의해서 세계 질서와 평화가 유지되었다는 뜻이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1년 당시 대영제국은 전 세계 약 1/4에 해당하는 인구와 육지 면적의 1/4에 해당하는 3670만 ㎢의 영토를 차지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중동지역과 예루살렘과 바그다드까지 지배함으로 십자군전쟁 이래 1000년 만에 영국이 기독교의 성지까지 지배한 셈이다. 세인트 제임스 가제트는 하나의 대륙과 100개의 반도, 500개의 곶, 1,000개의 호수 2,000개의 강이 포함된다고 했다. 1880년대에 세계의 바다를 떠다니는 상선 세척 중 하나가 영국의 배였으며, 또한 영국은 세계 상선의 1/3을 건조했고, 철도의 1/3 이상을 건설했다.

영국의 식민지 정책은 스페인과 달리 식민지에 자국민을 이주하여 식민지를 개척하였다. 때문에 식민지 건설은 오래 걸렸지만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오래도록 제국에 충실한 식민지로 남을 수 있었고 대영제국의 기초가 되었다. 대영제국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면서부터 전 세계의 패권을 잡게 되었다. 이후 1805년 프랑스와 벌인 트라팔가 해전에서 승리하면서 제해권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영국은 제국을 좀 덜한 사악한 제국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려고 노력했지만, 영국 역시 공격적이고 탐욕스런 제국을 면치 못했다. 해가지지 않았던 영국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도를 시작으로 독립한 나라만 53개국이나 되었다. 로마제국이 영토를 점령하는데 중점을 두었다면 영국은 중상주의가 목적이었다. 영국이 원하는 것은 교역을 통한 경제 바탕위에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었다.

극동에서 동유럽까지 지배한 몽골제국

1995년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000년 동안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칭기즈칸을 선정한 바 있다. 몽골제국은 1206년 칭기즈칸(1162-1227)이 건국한 제국으로, 그는 알렉산더 대왕의 348㎢, 히틀러의 219만㎢, 나폴레옹의 115만㎢를 합친 682만㎢보다 더 넓은 땅을 정복했다. 1279년 몽골제국은 동유럽에서부터 동쪽으로는 현재의 중국전역은 물론 한반도까지 유린하며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걸쳐 약 3,320만 ㎢나 되는 제국을 이뤘다. 몽골제국은 단순히 방대한 영토보다 100여 년간 동양과 서양이 문물을 교류하고 영향을 끼친 점이다. 몽골제국은 칭기즈칸이 사후 그의 자녀들에 의해 4개로 분할통치 되었다. 그러나 몽골제국은 1368년 영광도 잠깐, 오래가지 못하고 멸망되었다. 오늘의 유라시아대륙 대다수 러시아, 중국과 인도, 중동지역과 터키와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이 몽골제국의 계승국가이거나 몽골제국의 유산을 받아 형성된 나라라고 볼 수 있다.

1260년 칭기즈칸의 손자, 몽골제국의 5대 쿠빌라이 칸이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국 본토를 장악하여 세운 원나라(1271-1368)는 몽골제국의 직계 국가로, 중국화 된 명칭과 제도를 사용하였다. 이후 명(1368-1644)나라가 한나라를 정복하고 한족의 왕조를 건국했다.

오늘날 중국이 북경에 수도를 정한 것도 이미 몽골제국이 터를 잡았던 곳이다. 그럼에도 중국이 원나라를 중국의 왕조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미야자키 마사카쓰는 “중국은 칭기즈칸의 몽고제국을 ‘원’이라는 왕조이름을 붙여서 은근슬쩍 자기네 나라인 양 말한다.”라고 비판했다. 러시아 또한 250여년 몽골이 지배하면서 볼가강하류에 도시를 세워 교역중심지로 발전시킨 것은 몽골제국이었다. 하지만 푸시킨은 “몽골이 러시아에게 대수학도 아리스토텔레스도 전해주지 않았다.”라고 애써 평가 절하했다. 그러나 1788년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의 대작 “로마 제국 쇠망사”에서, 유럽의 관용적 태도와 건국된 미국의 헌법이 칭기스칸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서술했다. 이탈리아의 탐험가 마르코 폴로(1254–1324)가 17년 동안 몽골 지배하에 있던 동아시아를 방문한 후에 “동방견문록”이란 책을 썼다. 그의 책은 유럽인의 세계관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이후 유럽인들은 세계, 특히 동양에 대해 눈을 크게 뜨게 되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가장 먼저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자극했고, 그 결과 대항해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몽골제국은 이후 유라시아 정치와 국가 형태와 문화의 유형을 이해하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극동에서 서유럽까지 꿈꾸었던 러시아제국

러시아제국은 동유럽에서 극동까지 2200만 ㎢나 되는 방대한 영토를 지배했다. 러시아제국은 1721년 표트르 1세(1721-1725)부터 니콜라이 2세(1894-1917)까지,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를 말한다. 러시아제국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수도로 하여 입헌군주 체제에서 14명의 황제에 의해서 196년 동안 지속되었다. 1917년 공산주의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끝나고 소비에트연방(1917-1990)으로 재탄생 되었다.

1991년 고르바초프의 냉전 종식 정책으로 15개국의 연방 공화국들이 독립하였다. 법률상으로 소련은 1991년 12월 31일 사라졌으며, 새 국가는 러시아 연방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에도 러시아는 1710㎢인 면적을 소유한 나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러시아 영토는 현재 한반도의 78배, 프랑스의 25배, 독일의 47배나 되는 광활한 영토를 소유하고 있다.

기원전 37년경부터 668년까지 고구려가 만주벌판을 지배하고, 7세기부터 926년까지 발해가 연해주를 지배하고, 백제가 요동과 산동 반도를 지배할 무렵 러시아는 아직 부족 단위에 불과했다. 이후 러시아는 제국으로 발돋움하기 전 몽골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1237년 러시아는 몽골 타타르의 침공으로 오늘날의 크렘린이 함락되어 1480년까지 약250년 수난기를 보냈다. 수난기에 러시아는 유럽의 종교개혁과 문예부흥의 영향으로부터 단절된 반면 몽골지배의 유산으로 받은 절대주의와 군국주의가 뿌리 내리게 되었다. 이후 1480부터 1631년까지 150년 기간은 모스크바 공국시기로, 법과 농노제의 확립, 신분질서와 통치권의 확립 등 이른바 국가로서의 골간을 확립했다. 그리고 로마노프 왕조(1613-1917)가 성립되어 304년간 17대를 전제주의 정치를 이어왔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비롯 궁전과 박물관, 교회당, 광장 등 대부분은 로마노프 왕조시대에 건설된 건물물들이다.

특히 알렉산드르 1세가 1812년 나폴레옹 군대로부터 러시아를 지켜냈지만, 터키와의 크림전쟁(1853-1856)에서 패함으로 서유럽을 향한 발판을 마련하지 못했다. 1867년 전쟁의 후유증으로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미국에 720만 달러에 매각하게 됐고, 러일전쟁(1904-05)에서 패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까지 참전하게 됐지만, 1917년 “2월 혁명”으로,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면서 로마노프 왕조는 몰락하면서 끝내 서유럽 진출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오늘날의 러시아는 과거 차르와 제정 러시아 제국의 전통을 충실하게 계승,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는 여전히 쌍 독수리의 눈으로 주변 국가들을 살피고 있다. 외교 군사작전을 통해서 적당한 기회에 약한 주변 국가들의 영토를 흡수하려는 제국의 습성을 숨기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적어도 나폴레옹의 유럽지배와 나치 독일의 유럽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서방의 국가와 힘을 합친 것 등은 커다란 공적임에 틀림없다.

필자: 김학우/ 2070czmk@daum.net/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Previous Next
Close
Test Caption
Test Description goe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