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키워드 “성결”

  • 07/0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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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크시론 217호]  이창배 발행인

2020-01월호 사설

오늘, 새해의 키워드는 나의 성결이다. 가정의 성결이다. 교회의 성결이다. 새해가 시작됐고, 그 앞길이 어떤지 알지 못한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야하듯이, 혹은 범람하는 요단강을 건너야 한다. 그러기에 다시금 돌아보자.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의 성결을 점검하는 오늘을 넘기지 말자.

지축을 울리는 굉음, 하늘을 향해 오르는 수천, 수만 가지의 불꽃이 터지며 일으키는 섬광으로 요란스레 새해가 시작됐다. 해피 뉴이어~ 여기저기 새해맞이를 축하하는 소리와 박수소리가 광장을 가득 메운듯하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새해맞이에 열광하는 것일까?
오늘 아침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은 사뭇 몽롱하다. 판타지라고 할까? 몽환적(夢幻的)이란 표현이 잘 어울릴 듯하다. 자욱하게 안개가 덮여서 아주 가까이에 있는 우반(U-Bahn)전차역이 보이질 않는다. 그 특유의 울림소리로 레일 위로 전차가 가고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이따금 자동차가 지난다. 가까이 헤드라이트에 불을 켠 채 자그마한 자동차 한 대가 길바닥을 더듬듯이 슬금슬금 지나간다. 이렇게 내일 앞을, 아니 지금 눈앞에 펼쳐진 상황조차 분간이 제대로 안 되니 온갖 신경을 동원해 겨우 보일만한 거리만큼 조심조심 가야하는 게 현실이겠단 생각이 투영된다.
수일 전에는 오늘보다 더 심했다. 날씨가 차가워 온통 사방에 하얗게 서리까지 끼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하양색뿐이다. 길바닥도 얼어버렸다. 자동차를 타기위해 주차장까지 가는 그 짧은 길에 몇 번이고 미끌미끌, 중심을 잃을 뻔해가며 걸어야 했다. 다행히 고속도로는 그나마 상황이 나았다. 그래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서 멀리 뷔어츠부룩(Würzburg)까지 다녀오며 하루를 소진했다.
그렇게 가는 길에 도로 양옆에 펼쳐진 신세계 같은 아름다운 풍경도 바라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온통 자동차 속도와 도로상태에 신경을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정한 속도를 유지해야 하고, 주행 중인 앞차와 뒤따르는 차와 추월해 달려가는 차에 대한 적절한 간격유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온통 신경을 쓰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니 파김치가 된 것처럼 피곤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비정상적인 상황을 만난 후 일어나는 정상적인 반응일 것이다.
이런 자연의 변화에 대해서도 앞길을 가늠할 수 없는 게 정상일 텐데, 유독 사람만이 성급한 것은 아닐까싶다. 예측 불가능한 변화에 대해서는 임기응변이면 될 줄 아는지, 조심성을 상실한 채 쌩~ 달려가는 자동차를 보면서 혀를 내두를 정도로 놀랐다. 이렇게 짙은 안개를 가르며 순식간에 거리를 질주해 가는 자동차, 그 운전자는 안개가 가려진 저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아는 모양이다. 겁을 상실한 사람은 아닌지 두렵다는 생각도 든다.

일년을 한 눈에 볼 캘린더

올해는 책상의 정면 벽에다 전지 크기의 1년 플랜 캘린더를 붙였다. 예전에 결코 없었던 일이다. 한눈에 보이도록 1월1일로 시작해 12월31일까지 전체 날수를 인쇄해 놓은 것을 지난 연말 보험회사에 둘렀다가 공짜로 얻어왔다. 문방구점에서 사려면 꽤 비싸서 늘 망설여보다가 내려놓곤 했는데, 보험회사는 고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니 좋은 일이다. 물론 회사를 알리는 로고나 간략한 홍보문구 정도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으니 문제도 아니다.
예년 같으면, 컴퓨터에 설치된 캘린더에 일정을 기록해놓고, 틈틈이 본다고 하면서도 어느 땐 귀찮아서 건너뛰고, 놓치고, 잊어먹곤 했다. 스마트 폰 시대라고 하지만, 그 작은 기계에 빽빽하게 기록해놓은 내용은 이런저런 다른 볼거리에 관심을 빼앗기다보면 툭하면 놓치기 일쑤다. 또는 그런 번거로움이 싫어서 그냥 머리에 기억해뒀다가 잊어버려 낭패를 보곤 했다. 그러던 차에 눈앞 벽면에 한눈에 일 년치가 다 보이도록 부착해 놓게 됐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처럼, 역시나 아날로그적 세대라서인지 눈앞에 펼쳐놓고, 날마다 한눈에 전체를 살피는 것이 마음에 쏙 든다. 물론 사람이 나이가 들면 건망증이 생긴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당연시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 같다. 그렇다고 되든 말든 아무거나 채워서 일 년 플랜을 짜는 무모함도 이번 기회에 버려야겠단 생각이다. 아니, 그 보다는 계획을 짜놓고 지키지 않는 것 보담 지키고 할 수 있는 확실한 일에 자기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더더욱 미디어의 사역은, 약속을 얼마나 정직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지켜가는지에 대한 신뢰성이 절대적이고 생명 줄이라고 여겨도 무방 하리다. 주님 앞에서와 사람 앞에서 지극히 당연하거니와 그러기에 더욱 신중해야 하고 조심스럽게 사역을 해야겠다는 각오와 다짐을 해본다.

오늘 하루가 가장 중요한 타이밍

그렇다. 매일 매일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성실과 책임과 의무를 다 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서 오늘이, 그리고 지금이 가장 중요한 타이밍이 된다. 지금 우리 앞에 당면한 일은 또 무엇일까?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지구촌 곳곳에선 전쟁의 소문이 빠르게 확산이 되고 있다. 여러 곳에서 위기의 징후들이 감지되고 있다. 삶의 질이 어제보다 나아질 것이라고는 손톱만큼도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더욱 주님의 인도함을 받아서 매일 매일 발걸음을 옮기는 삶이 절실해지는 해이다. 그런 삶의 행태를 구약성경의 여호수아서가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범람해 넘쳐나는 요단강의 세찬 물길 앞에 섰을 때에 말씀 법궤를 어깨에 맨 제사장들은 발 아래로 두렵게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대로 발을 흐르는 물에 담그자 그 즉시로 흘러내리던 물은 끊어지고, 바닥은 물기가 사라지며 마른 땅이 됐다. 엄청난 사람의 물결이 마른 땅을 밟고 먼지를 날리며 건넜다. 한 가운데 제사장들이 딛고 선 땅에서 열두지파가 각각 돌을 하나씩 취해서, 열두 개를 가져다 길갈에 기념비를 세웠다. 그 기념비를 세운 뜻이 무엇일까?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음을 영원히 기념하라”는 것이다. 마치 우리에게도 그런 기념비가 있음을, 십자가로 이루신 구원을 기념하라신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열두 달로 나누어진 캘린더는 마치 기둥 열둘을 세워놓은 것 같아 보인다. 이 모든 날들을 주님이 승리하신 날로, 매달 매달을 그 증거로 삼을 테다. 그래, 이 모든 날의 주인은 주님이시고 내게 허락하신 날들이 아닌가.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3장 5절에서 상기시킨다.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이한 일을 행하시리라”
오늘, 새해의 키워드는 나의 성결이다. 가정의 성결이다. 교회의 성결이다. 새해가 시작됐고, 그 앞길이 어떤지 알지 못한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야하듯이, 혹은 범람하는 요단강을 건너야 한다. 그러기에 다시금 돌아보자.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의 성결을 점검하는 오늘을 넘기지 말자.

이달의 말씀 ㅣ여호수아 3:5-6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을 행하시리라.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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